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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소개

인물론1

경주이씨중앙화수회에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다. 종중을 빛낸 거인(巨人)들

7) 화가·영화감독·바둑계의 왕자

역사상 많은 화가와 서예가가 있었을 것이지만, 몇 분만 소개하기로 하겠다. 우선 연산군에게 불의의 화를 입은 종준(宗準)을 아마추어 화가의 초기인물로 보고 싶다. 그 다음으로는 선조 때의 해룡(海龍)이 글씨에 뛰어났으며 중국의 남종화(南宗畵)가 지니고 있는 문인화(文人畵)의 기법을 최초로 조선에 도입한 분으로 하곤(夏坤)을 들 수가 있다. 공은 저 유명한 좌의정 경억(慶億)의 손자이고 대제학 인엽(寅燁)의 큰 아들이기도 하다.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고금의 그림을 평한 평론집『두타초(頭陀草)』가 전한다. 다음으로는 헌종~순조대의 희수(喜秀)가 그림과 글씨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이런 가운데 철종~고종대에 글씨를 가업(家業)으로 하는 집안이 나타났다. 지금 덕수궁(德壽宮)의 정문에 [대한문(大韓門)]이라는 현판(懸板)을 경주이씨 문중의 종태(鍾泰)가 썼다. 비록 그림이나 글씨는 아니지만 역시 시각예술(視覺藝術)의 하나인 영화촬영기술의 개척자이며 최초의 감독이었던 명우(明雨)를 꼽지 않을 수가 없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형이었던 필우(弼雨)가 최초의 영화촬영기사였다. 또 같은 시기에 작가와 영화감독을 겸했던 규환(圭煥)도 한국영화의 초기 공로자이다. 그리고 바둑의 황제 창호(昌鎬)가 있다. 그는 10대의 어린 나이로 한국 뿐 아니라 동양의 바둑계를 석권했으며 나아가 세계에서 무적의 패자(覇者)로 우뚝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