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주이씨소개

시조이후의 세계

경주이씨중앙화수회에 오신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 중흥조(中興祖) 열헌공(悅軒公)과 두 편의 하시(賀詩)

5) 계자(季子 - 막내 아들) 세기와 국당공파의 [팔정(八廷)집]과 [매죽헌(梅竹軒)집]

열헌공의 계자(季子)·세기(世基)는 호가 송암(松巖)이었고 대제학을 거쳐 검교정승에 이르렀고, 그의 장자 국당(菊堂) 천(꼭두서니 천)은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의 손 달충(達衷)은 감찰대부를 거쳐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팔관회(八關會)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밀직제학이 되고 신돈(辛旽)이 주살된 후에 계림부윤이 되고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가.매죽헌집
국당공파(菊堂公派)에서는 효종을 도와 북벌(北伐)을 추진하던 세칭 [이완대장(李浣大將)]이 가장 걸출하다. 그는 무과를 거쳐 경기도수군절도사, 삼도수군절도사에 이르고 송시열(宋時烈) 등과 함께 효종의 명을 받들어 ‘북벌계획’ 을 추진하였다. 어영대장을 거쳐 훈련대장에 이르러 신무기의 제조와 성곽(城郭)의 보수를 하면서 청(淸)과의 일전(一戰)에 만전을 기했으나 효종의 급서(急逝)로 물거품이 되었다. 그후 포도대장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는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이며 함경도병마절도사였고 형조판서에 이른 충무공 수일(守一)이다.

나.팔정집
국당의 맏아들 판병부사 경중(敬中)의 후손 가운데 세종조에 청백리(淸白吏)에 책록된 정보가 있고 정보의 후손 중에 증 영의정 탕(宕)이 있는데, 여덟 아들을 둔데다가 모두 현달하여 [팔정(八廷)집]이라고 불리웠다. 이 8형제 가운데 정암(廷향기로울 암)·정형(廷馨)·정혐(廷향긋할 혐)의 세 형제가 유명하였다. 이 중 정암(廷향기로울 암)·정형(廷馨) 형제가 모두 대사간을 지냈고 명신으로 꼽히었는데 형 정암(廷향기로울 암)은 임진왜란에 의병장이 되어 여러 곳에서 왜군을 격파했고 아우 정형(廷馨)은 성리학의 대가였으나 형과 함께 의병을 이끌고 나아가서 공을 세웠으며 이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다. 『동각잡기(東閣雜記)』·『지퇴당집(知退堂集)』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