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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소개

시조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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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중흥조(中興祖) 열헌공(悅軒公)과 두 편의 하시(賀詩)

4) 차자 진과 아들 익재공파의 [팔별(八鼈)집]과 [화곡(華谷)집]

열헌공의 차자 동암공(東庵公) 진은 검교정승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하였는데 시문(詩文)으로 일세에 이름을 떨쳤다. 그의 둘째 아들 익재공(益齋公. 齊賢)는 고려말에 네 번이나 재상의 자리에 오른 대정치가이고 학자이며 또한 시인이었다.
가.[팔별집]
[팔별집]은 익재공의 6대손인 공린(公麟)의 현몽(現夢)에서 시작된다. 공린은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인 박팽년(朴彭年)의 취객(娶客 - 사위)이 되었는데 혼례를 치룬 첫날 밤의 꿈에 용왕(龍王)이 나타나서 “내 여덟 아들이 지금 사경(死境)에 이르렀으니 어서 구해달라. 그대가 내 여덟 아들을 구해준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라.”라고 하므로 꿈을 깨어 일어나보니 한밤중이었다. 잠든 신부를 흔들어 깨서 물어보니 신부의 말이 “어머니께서 며칠전에 사위에게 먹이려고 자라 8마리를 사다가 항아리에 넣어두었다”고 하므로 둘이서 8마리의 자라를 꺼내서 10여리 밖에 있는 호수에 방생(放生)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얼마후에 공린은 박씨부인과의 사이에 8형제를 두었는데 3남 원이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죽으니 자라 8마리를 방생하러 가는 도중에 죽은 한 마리가 그였음이 확인된 셈이다. 8형제를 둔 것은 용왕의 보은(報恩) 때문이라 여겨서 이름을 모두 자라, 거북, 고래, 곤(鯤) 등 물고기의 이름을 붙여서 오(熬)·구(龜)·원(자라 원)·타(악어 타)·별(鼈)·벽(거북 벽)·경(鯨)·곤(鯤) 이라 했는데 한결같이 글을 잘 지어 <8문장>이라고 불렀다. 이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아직도 자라를 먹지 않는다고 하니 8별을 자라의 환생(還生)으로 숭봉하는 가통(家統) 때문이다. 공린은 박팽년의 서랑(壻郞 - 사위)이라는 이유로 벼슬 길이 막혔었다가 어머니 남양홍씨(南陽洪氏)가 절부(節婦)로 표창되면서 30여년만에 길이 터져서 무과(武科)를 거쳐 현령(縣令)에 이르렀으나 3자 원이 사화(士禍)로 인하여 죽자 청주에 유배되었는데 반정(反正) 후에 신원(伸寃 - 신분,재산 등을 본디대로 되돌려 놓음)되었다.

구(龜)는 문과에 급제, 좌랑에 이르렀을 때에 아우 원의 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 후에 충주목사에 이르렀다. 원은 문과를 거쳐 호조좌랑에 이르렀는데 김종직(金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를 주자고 건의한 일로 곽산(郭山)에 유배되었다가 나주로 옮기고 갑자사화 때에 처형되었는데, 반정후에 신원이 되고 도승지(都承旨)에 추서되었다.
나.[화곡집]
화곡(華谷)은 좌의정 경억(慶億)의 호이다. 익재공(益齋公) 제현(齊賢)의 6대손인 공린(公麟)의 6대손이다. 공은 선조조의 명신 시발(時發)의 아들로 염결(廉潔).미렴의 명상(名相)이었다. 그의 자손은 대대로 현달(顯達)하여 대제학.이조판서를 지낸 인엽(寅燁), 숙종 때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이론가였던 손자 하곤(夏坤), 순조조의 예조판서, 판돈녕부사 였으며 공의 5대손인 집두(集斗) 등의 인맥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