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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소개

시조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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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중흥조(中興祖) 열헌공(悅軒公)과 두 편의 하시(賀詩)

1) 중흥조 열헌공과 3자 9손

중시조 휘 거명(居明)의 15세 후손인 문하평리 열헌공(悅軒公) 휘 핵의 3자 9손이 모두 이름을 떨쳤으므로 공을 이문(李門)의 ‘중흥조(中興祖)’로 받들게 된 것이다. 공은 3자를 두었는데 인정(仁挺)·진·세기(世基)인 바, 어머니 김해김씨가 서사(書史)를 친히 가르쳐 모두 세상에 크게 쓰이게 하였다. 장자 인정은 문과를 거쳐 고려 제1의 사간(司諫)에 이르고 차자 진과 계자 세기는 충렬왕 6년(서기 1280)의 친시(親試)에서 제2, 제3 위에 올라 임금이 황패(黃牌)를 내려 세인(世人)이 이를 “천장급제(天場及第)(하늘의 과장(科場)에서 급제한 것)”라 하였고 그 뒤에 인정의 아들 부와 규, 진의 아들 관(琯)과 제현(齊賢), 세기의 아들 천 등 5명이 모두 성균시에 장원을 하였다. 세상사람들이 [갑과손(甲科孫)]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고 인정의 두 아들과 진의 세 아들 세기의 네 아들 등 열헌공의 아홉 손자가 모두 문과에 등제하니 당대의 명유(名儒)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세과(世科. 대대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뜻)” 라고 극찬을 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경주이씨 가문이 고려의 현족(顯族)으로 우뚝선 것이다.